나의 급식 일생(?)
만 17세부터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나는, 하루 세끼 급식을 먹으며 공부를 했었다.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간 후에는 선배들이 사주는 이런 저런 밥을 얻어먹기도하고 동아리방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기도 하다가 삼시 세끼를 다 주는 장학숙에 들어간 뒤로는 충성스럽게 그 곳에서 밥을 먹었다. 단순히 '끼니를 때웠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지낸 장학숙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삼시세끼 한우, 전복을 비롯한 고급재료들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 농협에서 올라온 제철 우리 농산물을 양 제한 없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선한 재료에 여사님들의 환상적인 음식솜씨가 더해져 장학숙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외식이었다면 대학생 주머니 사정으로는 엄두도 못낼 퀄리티었고, 그 당시에 나는 장학숙의 급식을 먹기 위해 친구들의 약속을 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착실하게 대학교 4학년까지 마친 나는 졸업과 동시에 삼시세끼를 제공하는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회사 사내 식당은 매년 업그레이드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무한한 선택권과 메뉴를 선사했다. 회사에서는 식사 메뉴 뿐만 아니라, 빵, 커피, 과일 등 후식 및 간식거리까지 제공했다보니 지난 10년간 집에서 밥을 차리거나 마트나 편의점을 드나들 일도 별로 없었다. 아이들 역시 회사 어린이집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삼시세끼 먹고 왔기에 우리가족은 주말에나 외식을 하고 친정에 가서 밥을 얻어먹으며 '밥상걱정'을 없이 살아왔다.
밥 얘기를 한 일생에 걸쳐 이야기한 이유는... 지금 우리 가족 모두가 일을 그만두고 말레이시아 페낭에 있는 지금. 인생 최대의 식사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밥 운(?)이 좋게도 밥 잘주는 곳에서 잘 먹고 살아왔던 나는, 회사 식당에서 제공하는 열가지가 넘는 메뉴 리스트를 보며 '오늘 메뉴가 별로네' 하는 투정을 하는 사치를 부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매일 매일 삼시세끼 무슨 음식을 차려야할지 고민하고 살아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나와 내 남편 입으로 들어갈 삼시세끼도 문제이거니와, 학교에서조차 급식을 제공하지 않아 어떤 간식과 어떤 점심을 싸줘야할지 매일 매일이 밥 고민의 연속이다.
초반 몇달은 열심히 장도 보고 메뉴도 적어가며 집밥을 해 먹고 도시락을 쌌는데, 이게 정말 에너지도 많이 드는 일일 뿐더러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많지 않다보니 루틴이 반복되면 금새 지겨워졌다. 무엇보다, 절약되는 느낌도 좀처럼 들지 않았다. 마트에 한 번 가면 양손 가득 장을 봐오는데도 거의 매일 같이 마트에 가야지만 다음날 먹을 걱정을 안할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어느 순간 결심했다. 그래 사먹자!
외식의 도시, 페낭
이 곳 페낭은 외식이 극도로 발달, 아니 보편화 되어 많은 사람들이 삼시 세끼 밥을 사먹는다. (말레이시아의 문화일 수도 있겠으나, 일단 내가 지내본 도시는 페낭 한곳뿐이라 다른 도시의 상황은 모르겠다) 도로나 상점 곳곳은 대부분 음식점인데, 아무리 허름한 곳이라도 사람들이 제법 삼삼 오오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이런 야외에서 간단하게 먹는 음식들은 가격도 대부분 RM6~10 (우리돈으로 이삼천원) 수준. 집에서 땀흘리며 요리하는 전기세와 장보는데 사용한 돈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외식이 더 저렴하게 느껴지는 정도이다. 원래 나에게 외식은 '평소에 잘 못먹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로 평소에 먹는 식사보다 좀 더 맛있고 근사한 음식을 배불리 먹는 일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외식의 개념을 변경하기로 하였다. 그냥 외식도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 나와 남편은 자주가는 푸드코트를 우리만의 학식, 혹은 사내식당으로 정하고 별일이 없으면 그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Astaka Hillside Tanjong Bungah
몇 달전인 2023년 10월, 집에서 아이들 학교가는 길에 크게 푸드코트가 새로 오픈했다. Cove 앞에 있는 Astaka Hillside. 나와 남편은 이름이 어려워서 그냥 Hillside라고 부른다. 입구에 들어서면 과일 코너와 음료코너가 있고 푸드코트 중앙으로 음식점들이 위치하고 음식점을 애워싸고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새로 오픈했다보니 여타 다른 호커에 비해서 깔끔한 편인데, 자리를 잡고 앉으면 티셔츠에 order staff 라고 적힌 직원이 와서 아이패드로 음료 주문을 받아준다. 아래부터는 그동안 우리가 먹은 음식들. 음식가격은 10링깃 안팎으로 저렴한 편이며, 맛은 대부분 평범한 편이다.
제일 먼저 먹었던 Kong Rou Rice. 주문하면 그자리에서 바로 밥과 야채, 고기를 담아준다. 9링깃에 만족스럽게 고기식사.
태국 음식점은 두군데가 있는데, 하얀 접시가 안쪽에 위치한 가게, 연두색 그릇이 큰길쪽에 위치한 가게이다. 태국음식은 대부분 평타 이상이기때문에 맛있게 먹은 편.
큰 도로쪽 태국 음식점 바로 옆에 위치한 베트남 음식점. 말레이시아 음식과 비슷한듯 하면서도 베트남 특유의 깔끔한 맛이 아무래도 말레이시아 음식들보다는 맛있다 ^^;
- 왼쪽부터, 볶음밥 전문점에서 주문한 런천미트 볶음밥. 적당히 맛있다.
- 홍콩 음식점에서 주문한 고기가 올라간 계란볶음밥. 계란 볶음밥인데 계란이 정말 조금 들어있다. 볶음밥에 아주 소량의 계란말고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이 정도 퀄리티면 그냥 집에서 밥 퍼먹는게 낫다.
- Duck rice. 푸트코트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첫 가게인다. 여기는 나름 유명한지 항상 손님이 잔뜩 줄을 서있다. 이날 우리는 그냥 Duck rice를 주문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2인 혹은 3인 세트(?)를 주문해서 중앙에 오리고기 요리를 놓고 나눠 먹는 듯 하였다. 우리도 다음에 형님네와 함께 와서 그렇게 먹어봐야겠다.
- 타코집에서 구매한 엔칠라다. 맛은 있는데 타코집이 상대적으로 다른집에 비해 단가가 높은편이다. 대부분 14~17링깃 사이.
- 음식을 먹고나서도 뭔가 허전해서 남편이 추가로 사먹은 찐빵
- 궁금해서 사먹어본 Prawn&Pork roll (홍콩 스타일 충펀). 딤섬집에 가면 먹을 수 있는류의 음식인데, 안에 통통한 새우살이 씹히는게 참 맛있다. 하지만 먹고 배가 안부른게 흠. (딤섬은 늘 한두접시로는 배가 부르지 않는다.. 스시같은 존재..) 맛있게 먹었지만 배를 채우지 못해서 다른 메뉴를 추가로 먹게 되는 흠이 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세번 이상 방문하고 있지만, 나름 가게수도 제법 되고 가게 내에서도 다양한 메뉴들을 팔기 때문에 한동안은 계속 새로운 메뉴들을 시도해볼 것 같다. 야외지만 대형선풍기도 열심히 돌아가줘서 식사하는 동안에도 덥지 않고, 대형 테이블도 많아서 여럿이 함께 와서 식사하기에도 좋다.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생겨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곳도 조만간 지겨워지면 다시 우리의 새로운 급식당을 찾아 나서야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오늘도 맛있게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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